이양덕의 詩 文學

단풍 외 5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단풍 외 5

이양덕 2009. 10. 16. 05:58

 

 

 

단풍 /이만섭


 

 

나무는

가을만의 색깔이고 싶다

애써 가을만의 무늬가 되고 싶다

옷을 천벌도 더 지어 입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겉치레인 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온몸에 홍반의 징표를 달고

상기된 표정으로 물드는 것이

나무의 마지막 소망이다

붉게 물들어

지극한 생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가을을 깊이 들여다보면
조락을 앞두고 가을다워지기 위해 애쓴
나무의 자취가 역력하다
나중이 아름다운 생을
나무가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귀뚜리 2 /이만섭

 

 

가을밤의 불 꺼진 창은 적요하다

오래도록 귀뚜리 소리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 주억거리며 따라나선다

낯익은 고샅길 지나

달빛 젖은 허름한 옛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쓸쓸하다

찬이슬 머금은 맨드라미도

장독대 곁에서 외롭다

마른 풀 엮어

살짝이 이엉이라도 얹혀주고 싶다

 

 

 

 

 

 

가을풀꽃 /이만섭

 

 

착한 이름이어서 좋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불줘러도 그만 안 불러줘도 그만

자연의 방식 그대로

들녘에 피어도 좋고

숲길 어디에 피어도 무방하다

그냥 풀꽃이라는 이름으로

고즈너기 피었다가 지는

그래서 아련해지는 순하고 착한 꽃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 앞에 줘

편한 배경 같은

이름 없는 꽃이어서 좋다

 

 

 

 

 

 

 共鳴 /이만섭

 

 

아침

수종사 오르는 길에

굴참나무 숲에서 들리는 딱다구리 소리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산이 되받는다

 

골짜기의 산이 

가까이에서 아침인사를 주고 받듯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산이 다시 되받는다

 

후렴이 아니라

함께 내는 소리다 

 

 

 

 

 

 

 

면   /이만섭

 

 

나는 이 밤도 귀를 접지 못하네 

귀속의 달팽이

느릿느릿 풀숲을 기어가서

되돌아온 거리가

팔만사천법문이라네

일구월심으로

엄숙주의가 팽배한 사위를

쳇바퀴 돌 듯

번뇌의 탐구는 끝나지 않는데

문득문득 생각나네

내가 떠난 밤은

달팽이는 어떻게 될까,

하고.

 

 

 

 

 

 

대추나무 印章

 

이만섭

 

 

명신당에 가서 대추나무 인장을 새긴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꾹꾹 각을 하는

주인은 무료하다 싶던지

벼락 맞은 대추나무 설화를 꺼내든다

벼락을 맞고도 이리도 야무진 것은

아마 씨를 닮아서 일것이라는,

그래서 조율이시란 순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씨가 한개 뿐인 대추의 경우가 그렇지 않겠느냐고

중얼거리듯 흘러온 말을 재해석 한다

경단처럼 둥굴게 살려낸 목재에

벼락의 전류 같은 예리한 칼끝으로

나무의 결에 혼신으로심는 이름 석 자 

굳이 이름을새기지 않아도 몸에 지니면

퇴마사 쯤은 된다는 벽조목이라지만

곡절이 심지를 붙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인장이란 새긴대로 뜻이 닿는다는 데서

나무가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닌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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