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지하철은 나를 깨우지 않고 본문
지하철은 나를 깨우지 않고
이만섭
등걸잠의 귓전에 웅웅대는 독촉에도
열린 문 슬며시 닫기고
소리의 안부를 흘러버리며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물컹해진 귀밑에 꽂히는 한 줄 문장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방금 지난 곳은 군자역입니다.”
엉겁결에 전해 받은 메시지에 고갤 끄덕이면서도
나는 나를 쉽게 잊어버린다
도망치듯 멀리 다다른 망각의 저편,
봄날이면 배꽃이 하얗게 흐드러진 먹골이다
하느작 하느작 꽃들이 그녀의 머플러처럼 흔들리고
꽃은 꿈결일 때 더욱 아름답다
꽃 진 길도 추억으로 돌아서면 정겹다
그리움도 때로 이처럼 가까이 있다
나 언제 자의적으로 생의 굴레를 벗어난 적 있었던가,
그래서 꿈길은 자유롭다, 아름답다
눈부신 한낮으로 열린다
그러나 옛길은 금세 낯설어지고
알듯 모를 듯 비켜선 풍경의 손에 끌려
주섬주섬 일어나 추스르는 몸
흐려진 출구 뒤편으로 고갤 돌려
깨우지 않고 달아나는 기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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