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거울의 식탐(食貪) 본문
거울의 식탐(食貪)
이만섭
거울은 한 개의 입, 천 개의 이빨
보는 족족 무엇이든 입안에 들여 넣는다
삼거리 유리가게 거울들, 창을 뚫고 나와 앞 건물을
악어처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있다
서로 자기 몫이라며 내려놓지 않으며
모서리 날카로운 창살까지 바깥을 송두리째 즐긴다
저 근성, 고요한 투영식 식사법이다
꽃을 먹을 땐 더욱 꽃다워지고
음악처럼 감각적인 것은
아무래도 투명한 시각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규방 한 자리 꿰차고 칠보단장에 운학무늬 들인
수정 같은 얼굴 비스듬히 뉘어
불두잠 꽂아 아리땁게 지은 뒤태
갸웃갸웃 들여다보며 곤지나 찍는 명경일 때
참으로 거울답다
나직한 표정은 왜 그리도 수줍은지
거울에 식탐이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다가도 제 습성 감추지 못하고
어느 사이 배경까지 베어 물고 있는 걸 보면
지독한 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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