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낙서들 ㅡ 이만섭 본문
낙서들
이만섭
이 필사본은 타인의 이름을 제 이름으로 몰래 베낀 불온한 증거다
누군가 면벽의 고루함을 얻지 못해 제 이름으로 바꿔 쓰기까지 몽상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얼마나 채근하고 들었나,
어느 달밤 술주정뱅이가 소피를 누고 간 곳이라도
흠흠- 냄새를 즐기며 사생아를 낳듯이
은밀히 기록한 문자들의 지리멸렬한 표정은 편벽에 가깝다
풍문처럼 떠도는 말을 키우는 담벼락을,
마침내 누가 엿보고 있다
온갖 냄새 무릅쓰며 가로등이 따뜻해질 때까지퀴퀴한 자리도 괜찮다는 듯 그는 가슴에 부끄러움을 옴팍 감춰놓고
가파른 벽을 타며 벽 속의 말을 쫓아가는 사람
저 말들은 자신의 속말로 새기고 싶어
타인의 이름조차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그어댔겠지
회벽을 찢고 나온 음각들이 속살이 파인 듯 상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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