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의자의 키 ㅡ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의자의 키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2. 14. 08:56

 

 

 

 

 

 

  의자의 키 /이만섭

 

 

 

   누군가 어깨 위에 무게를 얹을 때

   비로소 자리에 드는 의자

   의자의 키는 그렇게 사라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이 지워지듯

   무관한 듯 묵묵히 이루어지는 일

 

 

   굳은 정강이뼈로 몸을 의지하는

   삐쩍 마른 의자의 다리가 외롭기만 하다

   키가 작아도 외로운 것이다

   무게를 지닌 것이 외롭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아니 모든 무게는 외롭다고 해야 하나

   건물의 기둥처럼 언제나 무게만으로 반복 중인데

   정녕 소멸해버린 키를 더는 찾을 수 없다

 

 

   오래전 의자는 그런 이유로 왔다

   의자 이전의 나무는 층층이 키를 올리며

   하늘을 향해 살았을 것인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나무의자를 위한 층계였다

   이제는 제 무게를 하나의 운명처럼

   꿋꿋이 견디며 자리를 지키는 까닭에

   번번이 사라지는 키였다

 

 

   누가 분리수거장에 의자를 내놓았다

   낡고 허름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이

   의자는 몸을 세워보는 것이다

 

 

   누군가 어깨 위에 무게를 얻는다면

   절름거리는 다리는 이내 쓰러지고 말 것이다

   이미 구차해진 자리에

   키를 일으켜 서 있는 저 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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