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과일들 ㅡ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과일들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2. 16. 15:26

 

 

 

      

 

   과일들 

 

       

 

        이만섭

 

 

 

       이것들은 열매에서 왔으나

       열매가 아닌 이름으로

       나무의 얼굴을 꾸미는 중이다

 

       색등처럼 볼에 물감을 입히는 손으로

       과일가게 여자가 사과를 닦는다

 

       흰 수건에 붉게 번지는 물감

       저녁엔 오렌지를 닦더니 아침이 온 것이다

       햇빛이 조명등처럼 과일의 중심을 비추고

       주술사처럼 그녀가 주문을 외운다

 

       그 빨개진 빛깔에서 걸어 나오는 사과나무

       뒤편으로 과원의 풍경이 들어선다

       저녁의 오렌지들이 서로 볼을 비비는 사이

       먼 이역의 야트막한 둔덕 아래 푸른 농장이 들어섰듯이

 

       그런 아침은 나무에서 과일을 따다가

       말갛게 씻어 바구니에 담는다

       여자는 과일을 고르는 손님에게

       이건 정물화가 아닌, 방금 이슬을 털고 풀밭에서

       떼굴떼굴 굴러 온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열매가 아닌 이름으로

       과일들이 나무의 얼굴을 가꾸고 있다

       꽃처럼 사랑받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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