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과일들 ㅡ 이만섭 본문
과일들
이만섭
이것들은 열매에서 왔으나
열매가 아닌 이름으로
나무의 얼굴을 꾸미는 중이다
색등처럼 볼에 물감을 입히는 손으로
과일가게 여자가 사과를 닦는다
흰 수건에 붉게 번지는 물감
저녁엔 오렌지를 닦더니 아침이 온 것이다
햇빛이 조명등처럼 과일의 중심을 비추고
주술사처럼 그녀가 주문을 외운다
그 빨개진 빛깔에서 걸어 나오는 사과나무
뒤편으로 과원의 풍경이 들어선다
저녁의 오렌지들이 서로 볼을 비비는 사이
먼 이역의 야트막한 둔덕 아래 푸른 농장이 들어섰듯이
그런 아침은 나무에서 과일을 따다가
말갛게 씻어 바구니에 담는다
여자는 과일을 고르는 손님에게
이건 정물화가 아닌, 방금 이슬을 털고 풀밭에서
떼굴떼굴 굴러 온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열매가 아닌 이름으로
과일들이 나무의 얼굴을 가꾸고 있다
꽃처럼 사랑받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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