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구부러진 길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구부러진 길 - 이만섭

이양덕 2013. 6. 18. 11:38

 

 

 

 

 

 

 

구부러진 길

 

 

 

    이만섭

 

 

 

비켜가는 길이 있다 괜찮다는 듯이

올곧게 자라는 들메나무에 자리 하나 내주고

그 옆구리를 흐르는 도랑물을 위해

몸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길 아닌 것들 다독거리며 간다

가다 보면 까맣게 잊고 지내는 풍경들

속속 민낯을 드러내며 만나서 반갑다고

세상천지 이처럼 마주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지도에도 없는 안부를 전해준다

산경에 들면 발길을 경배처럼 받들어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산

무지개다리를 오르듯 걷노라면

세상에 갇혀 살던 삶은 사라지고

어느덧 발아래 모여든 오밀조밀한 풍경들,

담장이 비켜선 골목길에 들면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그늘을 밟고 가는 길

전봇대 부근에서 그늘을 햇볕에 내보이고

다시 길 따라 몸 구부려 간다

비켜가고 비켜가서 손 내밀어 악수한다

세상의 방식을 익혀 사는 게

길인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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