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구부러진 길 - 이만섭 본문
구부러진 길
이만섭
비켜가는 길이 있다 괜찮다는 듯이
올곧게 자라는 들메나무에 자리 하나 내주고
그 옆구리를 흐르는 도랑물을 위해
몸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길 아닌 것들 다독거리며 간다
가다 보면 까맣게 잊고 지내는 풍경들
속속 민낯을 드러내며 만나서 반갑다고
세상천지 이처럼 마주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지도에도 없는 안부를 전해준다
산경에 들면 발길을 경배처럼 받들어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산
무지개다리를 오르듯 걷노라면
세상에 갇혀 살던 삶은 사라지고
어느덧 발아래 모여든 오밀조밀한 풍경들,
담장이 비켜선 골목길에 들면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그늘을 밟고 가는 길
전봇대 부근에서 그늘을 햇볕에 내보이고
다시 길 따라 몸 구부려 간다
비켜가고 비켜가서 손 내밀어 악수한다
세상의 방식을 익혀 사는 게
길인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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