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호수 ㅡ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호수 ㅡ 이만섭

이양덕 2013. 6. 15. 10:29

 

 

 

 

 

 

 

호수

 

 

 

  이만섭

 

 

 

 

저 둥글납작한 보자기에 함함하게 이는

결들은 바람이 지어놓은 것이어서

바람 자면 언제든지 팽팽하게 펴질 테지만

결의 파문 속으로 들어간 사연 때문에

수면은 늘 비밀에 갇혀 있다

 

 

내게도 저런 얼굴 하나

호수처럼 깃들어있는데,

나는 한 번도 나의 호수를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해질 녘이면 청둥오리 떼 날아와

첨벙첨벙 날갤 적시며 파문을 들춰내지만 그것은

호수의 물낯을 즐기는 시간일 뿐,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지나갈 때면

나는 우체부가 되고 싶었고

흰 염소가 언덕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으면

나는 흰 염소가 되고 싶었다

 

 

그토록 다가가고 싶던 수면이

어느 날 마을 언덕에 우뚝 솟은 붉은 양철지붕과

뒤란의 대밭이며 과수원까지 고스란히 내려와

물버들 곁에 풍경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림자들은 거울처럼 건너와

호수의 깊은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파문 속으로 들어간 비밀은 어디에도 없고

불망으로 서성이는 내 부끄러움을

호수만이 동그란 얼굴로 건너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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