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호수 ㅡ 이만섭 본문
호수
이만섭
저 둥글납작한 보자기에 함함하게 이는
결들은 바람이 지어놓은 것이어서
바람 자면 언제든지 팽팽하게 펴질 테지만
결의 파문 속으로 들어간 사연 때문에
수면은 늘 비밀에 갇혀 있다
내게도 저런 얼굴 하나
호수처럼 깃들어있는데,
나는 한 번도 나의 호수를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해질 녘이면 청둥오리 떼 날아와
첨벙첨벙 날갤 적시며 파문을 들춰내지만 그것은
호수의 물낯을 즐기는 시간일 뿐,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지나갈 때면
나는 우체부가 되고 싶었고
흰 염소가 언덕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으면
나는 흰 염소가 되고 싶었다
그토록 다가가고 싶던 수면이
어느 날 마을 언덕에 우뚝 솟은 붉은 양철지붕과
뒤란의 대밭이며 과수원까지 고스란히 내려와
물버들 곁에 풍경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림자들은 거울처럼 건너와
호수의 깊은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파문 속으로 들어간 비밀은 어디에도 없고
불망으로 서성이는 내 부끄러움을
호수만이 동그란 얼굴로 건너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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