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대장간의 아침 - 이만섭 본문
대장간의 아침
이만섭
이 가게의 쇠들은 무거운 짐 지고
저마다 곤히 잠들어 있다
아침이 오면 누군가가 깨워줘야 하겠는데
귓속에 나팔소리를 불어넣어 고막을 울려줘야 좋겠는데
새벽종이 없다
모루는 모루대로 쇠메는 쇠메대로
종일토록 두들기고 맞다가 서로 지쳐 있는 것이다
지난밤에 매어놓은 몸 그대로 둔 채,
대장장이는 풀무 곁으로 가 괴탄에 불을 지핀다
바람을 들이는 풀무질 소리에 하나씩 깨어나는 쇳조각들
잉걸불로 타오르는 파란 불꽃 앞에
굳어 있던 표정들 풀어내며
새날을 공표하듯이 허공에 종을 친다
꺼무스레하게 그을린 대장간이
단조작업을 앞두고 이내 화색이 돈다
수행자처럼 연마의 시간을 견디는
개똥쇠라고 불리는 못난 쇠의 풋것들,
제 이름 새로 지어 나가는 게 꿈이다
삼백예순 번을 얻어맞는 동안
일곱 번의 담금질로 벌리는 끈질긴 사투 끝에
화해라도 하듯 제 입으로 터트린 고백처럼
예리하게 벼려진 쇠의 날,
아침 식단을 위해 준비한 식칼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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