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모래를 쓰다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모래를 쓰다 - 이만섭

이양덕 2015. 2. 21. 10:15











모래를 쓰다


  이만섭




샛별 같은 청춘일 때 잠 못 이루며

달밤의 바닷가에서 파도와 맞선 나날들,

그 정체성들,


모래만이 사는 모래의 나라에

모래의 모국어들, 모래의 집들, 모래의 도구들,


모래로 누우면 해면처럼 부푸는 모래의 꿈,

모래로 출렁이면 아코디언처럼 노래하는 모래의 바다,

하나같이 모래다 모래끼리다


그런데도 한줌 손바닥에서

미꾸리처럼 빠져나가는 모래들, 추억들,


백사장 드넓은 저 한가운데

각자 흘러온 결정체로

정오의 태양 아래 호흡마져 끊어놓고 빛난다


모래의 빛과 태양의 빛이

서부극의 사나이처럼 결투의 태세다

저들은 제각각 흙먼지를 헤치며 말처럼 도착했으니

모래와 모래 사이에 반짝이는 황금빛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모쪼록 눈부심으로 읽어내는 존재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닐 테지만

모래 사이에서 금을 캔다는 것은 시대의 불문율이다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찮은 줄만 알았던 모래가

천하장사가 움켜쥔 손아귀에서 공중으로 뿌려지듯이

비천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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