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이 가을의 문득,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이 가을의 문득, - 이만섭

이양덕 2015. 9. 13. 05:01









이 가을의 문득,


                 이만섭




어느 날 창밖의 앞산이 색을 입고

햇볕에 그을린 손이 붉어진 사과를 딴다

기약한 일이면서도 기약하지 못한 듯

불현듯 홀현 듯

하고많은 말 가운데 가을의 첫 말로

이 말 마주치는 순간 창가는 나를 붙든다

갈수록 쓸쓸해지는 세상을

귀뚜라미는 간밤에 목청껏 노래했지

살갗을 슬쩍슬쩍 찔러보는 아침의 찬 공기며

제 숨겨놓은 속내를 드러내다가

이처럼 조우하는 것들,

담벼락을 파랗게 물들이며 월경해간 담쟁이도

빛에 빼앗긴 자리로 돌아가려는 듯

손톱에 피멍이 들도록 푸름을 가꾸던

핏줄 같은 줄기를 마침내 햇볕에 말리고 있다

이 어쩔 수 없음이 호명하는 것을

겨우 알아차린 나는 이탈하지 않으려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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