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못난이의 詩 - 이만섭 본문
못난이의 詩
이만섭
지난가을 분갈이하려고 화분 하나 주워왔는데
그만 시기를 놓치던 중
주워온 화분에서 무 싹이 올라왔다
뽑아내려다가 그마져 귀찮아 잎들을 싹둑 잘라냈는데
죽은 듯 다소곳하던 자리에서 다시 파랗게
새순을 밀고 올라왔다 두고 보노라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주변이 풋풋해진 기분이다
손 안 대고 분갈이라도 한 듯, 지내는데
어느 날 톱니 같은 잎을 펴 기지개를 켜듯 껑충
뻗친 새잎이 가상하다
한겨울에 느끼는 초록의 맛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어 올려 보여주듯
잔챙이 무가 이 겨울을 푸르게 담아내고 있다
흙에 뿌리를 두고 삼한을 나는 것인데
세일을 한다며 아내가 공판장에서
한 개 천 원에 종아리만 한 무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싱싱해 보이고 소중한 것은 못난 탓이리라,
지난가을 오갈이 들어 화분째 버려진 것을
보란 듯 제 세상 내보인 못난이가
푸른 더듬이를 지닌 한 편의 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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