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어둠 속의 노래 - 이만섭 본문
어둠 속의 노래
이만섭
편지를 쓴다 밤새워, 가도 가도 나무그늘뿐인 산길 같은
호젓함은 비단처럼 깔아 어떤 부재를 거울에 비추듯 쓰고
또 쓴다, 신갈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계곡 물소리,
물소리 비낄 때마다 발걸음 재촉하며 취한 듯 헤매는 듯,
어디쯤 오롯하게 적막이 기다릴지라도 그곳이 나를 밝혀
줄 불빛이라면 아무려면 어둠도 한 손짓일 테지만 시방
나를 에워싼 숲 그늘은 신들의 공간, 그들의 주사위놀이
패에 갇혀 가까스로 분홍 싸리꽃 피었던 자리에서 편지를
쓴다, 삼경 즈음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흰 달이 서편으로
빠져나가고 정수리를 비추던 별빛도 점차 빛을 여윌 때
이곳은 해발 어디쯤인가, 내 떠나온 저녁의 집들은 지붕
들만 빼곡하다, 간밤에 솔부엉이가 배웅해주었지, 청춘의
밤을 뒤척일 때 뒷산의 숲을 밝히며 어둠을 지키던 눈초리는
이밤을 떠나서 여영 돌아오지 말라는 듯 내가 나의
편지가 되어 우편함에 도착할 때까지 노래처럼 쓰라 일러
주었지, 곰곰 깊어가던 어둠을 지나오며 밤새워 열어둔
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옷깃의 이슬은 어둠 속 내막을
투명하게 들어내듯 소매 끌 듯 써온 편지를 위해 밤을 고
스란히 바친 외로운 영롱, 어둠 속을 동행한 산길의 나무
들에게도 이쯤에서 새벽잠을 내준다, 잔기침 새어 나오는
핏발선 눈으로 서녘을 떠난 발걸음이 먼동에 닿을 때까지
애벌레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듯 밤새워 쓴 편지가
어둠 속의 노래였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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