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겨울 아침의 대답 - 이만섭 본문
겨울 아침의 대답
이만섭
창을 닫아놓고 잠든 벽이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필요하다. 눈이 와서 장독대 같은 소복하고 가지런한 바깥이 순잠에서 깨어날 때 초식동물의 입김 같은 것이 필요하듯, 늙고 오래된 귀 하나뿐인 벽은 오직 제 닫아놓은 창이 깨워야만 눈 비비며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틈 사이에서 불면의 휘장을 두르고 갈마들던 바람이 떠난 자리가 고스란히 차갑다. 밤새워 질문을 퍼붓던 북풍은 어디로 물러갔나, 토끼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은 뒤란에도 흔적 없고, 그곳의 흙담 아래 한철 무심하고 무심하게 지나쳐온 춘란은 잎들을 활처럼 휘어 옹기종기 새파랗게 깨어 있다. 저희 봄을 기다리며 여기 꿋꿋이 잘 있어요, 하고
밤사이 눈이 와서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것은 또 있다. 처마와 처마의 오붓한 구멍들, 지붕은 저것들을 다독거리느라 밤 새워 비밀히 솟아오르고 흰 눈이 선물처럼 안겨준 자리다. 그곳에 보푸라기처럼 묻어 있는 참새의 가슴 깃털이며, 연기 뿜어 올리는 아침의 굴뚝은 어쩌면 저리도 성스러운가,
한뎃잠을 부탁하듯 어깨에 얹혀 있는 흰 눈의 무게를 나무는 까막까치나 직박구리가 날아와 털어주는 것보다 붉은 오목눈이가 그 작고 앙증맞은 발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듯이 사뿐사뿐 다녀가길 바라는 것이지만, 어느덧 맑은 햇살 또렷해지고 환해진 창이여,
내 곁에서 툭툭 털어내듯 물러나는 어둠의 강박관념들, 귀는 저들의 대답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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