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마당의 행위 예술 - 이양덕 본문
마당의 행위 예술
이양덕
비어 있으나 채워진 곳이다. 해학과 애환을 부등켜 안았다. 마파람이 들이닥쳐 한바탕 휩쓸면 삐에로는 떠나고 색깔, 기호, 마음의 방향, 프로포즈 형식이 충돌하지만 어우러지면 하나가 되고 힘주어 팔짱을 낀다.
개구장이들이 마당을 빙글빙글 돌리며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 뒷다리 걸어서 내동댕이치면 어지럼증에 땅이 노랗고 고함소리는 삿대질한다. 고삐풀린 망아지 떼가 우르르 줄달음치면 싸리비는 적막을 쓸어내고 지저귀는 새들의 맑은 소리로 채워놓았다.
마당 네 귀퉁이를 업혀온 이별이 팽팽하게 조인다. 먹감나무 아래 달빛 차일이 펼쳐지면 꽃상여는 산자들을 불러모아 저승길에 모란 연꽃을 뿌리며 떠난 자와 보내는 자를 위해 요령은 밤새 울어대고, 모퉁이 화투판에선 희번덕이는 눈망울과 홍어 삼합 막걸리 한사발이 悔恨과 검붉은 눈물에 버무려진다.
다른 표정과 느낌을 안아볼 수 있는 곳, 시시각각 표정을 비우고 채울 수 있고 꽃이 축포를 터트리는 봄날 쏟아지는 축하 속에 무한無限 사랑을 맹세한 후 마당을 걸어나오면서 혐嫌한 너와 무질서로 범벅된 내가 정교한 생활 예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신속하게 알아챌 것이다.
열네살 소녀는, 방금 창공을 가로지른 비행기를 타고 스폐인으로 가서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방인들과 하룻밤을 묵고 빠에야 와인을 곁들여 햇살 퍼지는 마당에 철퍼덕 주저앉아 수염이 덥수룩한 파란 눈 아저씨의 아코디언에 맞춰 고갤 끄덕이는 몸짓도 호기심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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