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그리운 아버지 본문
그리운 아버지 /이만섭
가을 논에 벼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논두렁을 서성거렸다
참새를 쫓는 것도 아닌데
해가 저물도록 당신의 그림자 거느리고
벼들을 하냥 굽어보는 거였다
익은 벼를 보는 일이 이만저만한 기쁨이 아닌 듯
당신은 그렇게 혼자 뿌듯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유월 장마에 물 진 벼
밤새 잠 못 이루고 한숨 소리로 속앓이 하시다가
이른 새벽 득달같이 쫓아 나와
꺾인 벼 낱낱이 보듬어 일으켜 세우시며
여린 것들이 안쓰럽다며 아침식사도 거르시고
태산 같은 걱정 묵묵히 참아낼 때
어머니는 탁주로 마음을 풀어 드렸다
그런 세월 꿋꿋이 견디고
당신의 손길 속에 탐스럽게 익어났으니
농부라면 어찌 설레지 않을까,
논배미의 벼들 다 베어놓고
마침내 허리 펴고 텅 빈 들녘을 바라보시며
개선장군처럼 환히 웃으시던
당신의 이마의 굵은 주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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