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그리운 아버지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그리운 아버지

이양덕 2009. 10. 16. 05:55

 

 

그리운 아버지 /이만섭

 

 

가을 논에 벼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논두렁을 서성거렸다

참새를 쫓는 것도 아닌데

해가 저물도록 당신의 그림자 거느리고

벼들을 하냥 굽어보는 거였다

익은 벼를 보는 일이 이만저만한 기쁨이 아닌 듯

당신은 그렇게 혼자 뿌듯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유월 장마에 물 진 벼

밤새 잠 못 이루고 한숨 소리로 속앓이 하시다가

이른 새벽 득달같이 쫓아 나와

꺾인 벼 낱낱이 보듬어 일으켜 세우시며

여린 것들이 안쓰럽다며 아침식사도 거르시고

태산 같은 걱정 묵묵히 참아낼 때

어머니는 탁주로 마음을 풀어 드렸다

그런 세월 꿋꿋이 견디고

당신의 손길 속에 탐스럽게 익어났으니

농부라면 어찌 설레지 않을까,

논배미의 벼들 다 베어놓고

마침내 허리 펴고 텅 빈 들녘을 바라보시며

개선장군처럼 환히 웃으시던

당신의 이마의 굵은 주름이 그립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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