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나에게 쓰는 가을 고백 - 이만섭 본문
나에게 쓰는 가을 고백 / 이만섭
선잠으로 돌아누워도 박동하는 심장은 계절을 잰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쩌랴,
몸은 이미 가을 깊숙이 들어와 버렸으니
마음인들 도리없는 일이
원래 나는 이 가을을 피하고 싶었다
이제는 "아니야" 라는 단호함으로, 꼭 그러고 싶었다
한때 나무가 푸른 날에는 손꼽아 기다리며
색칠하여 옷을 입은 풍경이 그리웠지만
그것이 정작 나를 길들여버린 중독 같은 것임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매번 이 계절을 지나오면서 한두 번 격는 일이 아니였기에
더는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이 이제는 두렵고 내키지 않는다
산이 가로 놓여있으면 다리 품을 팔아서라도 돌아가고
물이 앞서 흐르면 수원지 부근, 근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강둑을 걸어 가을을 횡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떠나와 몸과 마음이 섞이어 나타나는 자각증세들,
선병질적으로 발작하는 내 안의 갈등을 어찌해야 할것인가
나는 가을이면 아무도 가지않은 조촐하고 평이한 나만의 길을 걷고 싶었다
실바람 가붓대는 얄보드란 흙길을 걸어서 마침내 도달한 곳,
그 어떤 충동도 유혹도 없는, 높낮이가 없고 굽이진 길이 아
사위가 탁 트인 사유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계절을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추억으로 밀쳐오는 것들은
나의 발목에 사슬을 채우고 지치도록 마음을 빼앗아 갔다
때로는 가혹한 채찍질로, 그리움의 본질을 앞세워서
혹자는 그럴것이다
추억을 외면하는 자는 꿈도 흐려있다고,
이 수식의 함정에 빠져있을 때 나는 멍하니 나의 가을을 잃어버려야 했다
가을비 내려 젖은 나뭇잎이 지상의 가장 쓸쓸한 자리에 드러누울 때
그것은 분명 나무로부터 여정에 드는 낙엽이 아니였다
흙섶으로 내쳐진 계절의 슬픈 자화상 이였다
그때마다 그리움의 창에는 불빛도 꺼져갔다
마른 잎이 살아있음을 그때 알았다
이 가을 나는 내 마음의 해방지대에 서고 싶다
나만의 사유가 빼곡한 허상의 그리움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아직은 섣부른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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