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검은 비닐봉지가 공중을 날 때 ㅡ 이만섭 본문
검은 비닐봉지가 공중을 날 때
이만섭
검은 비닐봉지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다
맨발의 흑인처럼 바람을 걷어차며
처음엔 슈퍼 앞 땅바닥에서 꼼지락거리더니
어느 순간 허공으로 솟구쳐
돌개바람의 꽁무니를 쫓아 어지럽게 돌진한다
찻길을 횡단하고 가로수보다 더 높이 온몸이 날개다
누군가 쓰레기를 담아 버렸으리라는 추측인데
그것은 공범자의 알리바이 같은 것일 뿐,
비닐봉지 같은 건 더는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은 고공 시위에 든 철탑 위의 노동자처럼
아무도 말릴 수 없는데
저항하는 몸짓이 내게로 온다
덜렁거리며 흔들리는 손에 든 귤 봉지를 보았던 것이다
모가지를 움켜쥔 이기적인 손을
나는 가지런히 바지의 재봉선에 붙인다
아무렇게나 쓰고 구깃구깃 버리는 것이 원망스러워
검은 비닐봉지는 몸에 지닌 헛바람을
누구에게라도 한바탕 뿜어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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