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저 사라진 가을 자리에 ㅡ 이만섭 본문
저 사라진 가을 자리에
이만섭
뒤란의 오동나무가 베어졌다
회색 담장 뒤편으로, 어릴 적 할아버지는
집안에 잎 큰 나무를 들이지 말라 하셨는데
아버지의 계절은 그렇게 가고
그 무렵처럼 오동나무 사라진 곳을 망연히 바라본다
길이 뚫린 듯 북방이 휑하다
저 오동나무 베인 자리 오래 바라보면 누군가 찾아온다
붉은 노을 거둬가고 하늘 무거워질 때
텅 빈 마당을 밟고 오는 손님
처마는 가지런히 두 팔을 벌려
어둑어둑 깊어가는 집을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동그마니 귀퉁이로 남은 마당에 달빛 물결 넘실거리면
오동나무 그루터기에 드는 푸른 빛
한 진인이 앉아 피리를 분다
나무여, 나무여, 한 시절 푸르자고 심은 나무여!
제풀에 희미해진 정처 없는 시간
저녁 빛에 가려지는 정체를 드러내어
진인의 피리 소리를 따라나선다
'※{이만섭시인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어 있는 방 - 이만섭 (0) | 2012.12.15 |
---|---|
조롱鳥籠의 발견 ㅡ 이만섭 (0) | 2012.12.09 |
검은 비닐봉지가 공중을 날 때 ㅡ 이만섭 (0) | 2012.12.04 |
매우 서사적인 김밥에 대해 ㅡ 이만섭 (0) | 2012.11.24 |
무슨 병이 깊어 (0) | 2012.11.20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