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냄새의 지문(地文) - 이만섭 본문
냄새의 지문(地文)
이만섭
공터를 즐기는 그가 가뭇없더니
놀이터 한구석에 처박힌 것이 목격되었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목 졸린 채
누군가의 손에 유기된 것이다
곁에 어엿하게 벤치를 앉혀놓고
감정을 길들이는 시간,
운동장 같은 허공은 붕 떠있는데
보기만 해도 후각을 동물처럼 습격할 태세다
라일락 꽃도 시들고 밋밋해진 탓일까
그보다도 아무런 적의 없는 공터를
훔쳐 냄새를 사육하는 이가
공터의 속성을 잘 헤아린 것은 아닌지
한 아이가 축구공 걷어내듯 발등으로 차올리자
냄새의 질료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평온한 벤치 부근이 금세 쑥대밭이 되었다
울타리 밑에서 계절을 익히던 황매화도
그의 거친 몸짓에 낯을 찌푸린다
제 감정에 겨운 행동을 향기인 양 퍼뜨리며
보도블록까지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
인질처럼 붙들어놓고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끈질긴 입맞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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