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봄밤이 찾아오는 길목 - 이만섭 본문
봄밤이 찾아오는 길목
이만섭
저 골목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왕래가 뜸해서
회색 담벼락에 말라붙은 담쟁이 넝쿨이 거미줄 같다.
초입에 목련나무집 주인은 담쟁이 붉을 때
카메라를 메고 슬쩍 다녀갔을 뿐
더는 자취 보이지 않았고
밤이 와도 가로등 또한 불 켜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경칩 지나고 어느 날
햇살이 까치발로 다녀가는 것을 목격한 뒤,
시시때때로 골목은 풍선처럼 부풀어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바람 새나가듯 토라지기 일쑤였고
주변의 분위기도 비가 올 듯 말 듯
멀쩡한 하늘을 훼방 놓는 일이 잦아졌다.
필시 단속 못 할 일이라도 생긴 듯싶지만
골목의 일이라서 골목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후 어디를 쏘다니다가 몰려온 것인지 아이들이
자두나무 문구점 오락기기에 올망졸망 붙들려 있다.
한 아이는 길어진 오후 시간에 풀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마른 흙에 온기를 나누듯 저무는 해 동무하고,
나는 그런 광경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계피 냄새 같은 향기를 몰고 온 끄물거리는 날씨는
코끝을 벌름거리게 하는데
때마침 가로등이 켜지자
고양이처럼 골목으로 달아나는 냄새들,
냄새의 긴 꼬리에 감겨
어둠 속으로 내 마음 붙들러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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